오늘의 이야기는 "시지프스의 바위: 끝없는 집안일과 육아의 굴레에서 의미 찾기"입니다. 신화 속 수많은 형벌 중에서도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형벌로 꼽히는 것이 바로 시지프스의 바위입니다. 살갗이 찢어지는 육체적 고통보다 인간을 더 미치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무의미한 반복'이기 때문이죠.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다 보면, 가끔 내가 이 시지프스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거실, 돌아서면 다시 밥을 차려야 하는 주방에서 우리는 매일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화 속 시지프스가 그 절망적인 굴레 속에서도 묵묵히 다시 바위를 향해 걸어 내려갔듯, 우리의 반복되는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도 그 바위를 기꺼이 끌어안게 만드는 눈부신 의미가 숨어있습니다.

1. 산 정상에서 다시 굴러떨어지는 무거운 바위
영원한 무의미의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교활할 정도로 지혜로웠던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는 신들을 속인 죄로 저승에서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거대하고 무거운 바위를 가파른 산 정상까지 밀어 올리는 것이었죠. 땀을 뻘뻘 흘리며 온몸의 뼈가 부서져라 바위를 밀어 올리지만, 형벌의 진짜 잔인함은 정상을 코앞에 둔 순간 시작됩니다. 바위는 야속하게도 다시 산 밑바닥으로 쿵쿵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면 시지프스는 다시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 방금 전까지 밀어 올렸던 그 바위를 처음부터 다시 밀어 올려야만 합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아무런 결과물도 남지 않는 무의미한 노동. 신들은 인간에게 '희망 없는 헛된 수고'만큼 끔찍한 형벌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치우고 돌아서면 난장판, 어린이집 방학의 절망
가장 끔찍한 형벌이라는 이 이야기에 유독 마음이 쓰이는 것은, 며칠 전 겪었던 어린이집 방학 기간의 제 모습과 너무나 똑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방학을 맞은 아이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큰맘 먹고 회사에 연차를 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삼시 세끼(일명 돌밥돌밥)를 차려내고, 먹이고, 설거지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진이 빠지기 시작했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꾹 참고 거실 바닥에 어질러진 블록과 장난감을 종류별로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아, 드디어 다 치웠다' 하며 잠시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는 그 순간,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장난감 바구니를 통째로 바닥에 쏟아버렸습니다. 단 5분 만에 거실은 다시 폭격 맞은 듯한 난장판으로 돌아갔죠. 산 정상에 올려놓은 바위가 굉음을 내며 다시 밑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밥 차리기와 치우기의 굴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다 보니, 차라리 내 일만 하면 되는 '회사로 출근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처럼 솟아올랐습니다.
2. 헛된 수고가 주는 끔찍한 피로감
무너져 내리는 성취감과 존재의 상실
시지프스의 바위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육체가 힘들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허탈함' 때문입니다. 회사에서는 프로젝트를 끝내면 성과라도 남고 보상이라도 주어지지만, 집안일과 육아는 완벽하게 해내면 그저 '0'의 상태(본전)로 돌아갈 뿐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바닥을 닦고 옷을 빨아도 다음 날이면 다시 먼지가 쌓이고 빨랫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죠.
어린이집 방학 내내 아이와 지지고 볶으며 이 헛된 수고를 쉴 새 없이 반복하다 보니, '나는 지금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지워지고 그저 밥 짓고 청소하는 기계가 되어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만 같아, 몸도 마음도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늪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습니다.
3. 절망의 바위를 다시 들어 올리게 하는 마법의 주문
운명을 사랑한 영웅, 시지프스의 미소
프랑스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 절망적인 시지프스의 신화를 전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그는 바위가 굴러떨어진 후, 다시 바위를 향해 터덜터덜 산을 내려가는 시지프스의 발걸음에 주목했습니다. 신들이 내린 가혹한 운명에 굴복하며 울부짖는 대신, 시지프스는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기꺼이 바위를 향해 걸어갑니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그 고통스러운 순간마저 온전히 자신의 삶으로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카뮈는 이렇게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며 바위를 껴안는 시지프스가 오히려 형벌을 내린 신들에게 승리한 '행복한 영웅'이라고 말합니다.
"엄마, 내일도 또 재미있게 놀자!"
제 삶에도 무너져 내린 바위를 다시 기꺼이 밀어 올리게 만드는 마법 같은 순간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끝없는 집안일에 치여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드디어 아이를 눕힌 고요한 잠자리. 캄캄한 방 안에서 아이가 제 목을 꼭 끌어안으며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엄마, 오늘 엄마랑 하루 종일 놀아서 너무 행복했어. 내일도 또 재미있게 놀자!"
그 맑고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엉켜있던 모든 허탈함과 뼛속까지 시리던 피로가 순식간에 눈 녹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오늘 하루 땀 흘려 굴려 올렸다가 허무하게 떨어져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바위는, 결코 무의미한 헛수고가 아니었습니다. 끝없이 밥을 차리고 어질러진 거실을 치우는 그 지루한 반복의 시간들이 모여, 우리 아이의 하루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행복한 천국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4. 나만의 무거운 바위를 묵묵히, 그리고 기꺼이 사랑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은 매일 똑같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지루한 과정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거실은 또다시 장난감으로 난장판이 될 것이고, 싱크대에는 씻어야 할 그릇들이 산처럼 쌓일 테죠. 하지만 저는 이제 밑으로 굴러떨어진 그 바위를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밀어 올리는 이 무거운 바위는 형벌이 아니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무탈한 평화를 지탱하는 가장 숭고하고 단단한 주춧돌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치워도 다시 어질러지는 집안일 앞에서도, 아이의 꺄르르 웃는 숨소리 하나면 족합니다. 내일도 저는 기꺼이 산 밑으로 내려가,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소중한 저만의 바위를 웃으며 밀어 올리기로 다짐해 봅니다. 끝없는 육아와 일상의 굴레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바위를 굴리고 있는 모든 '시지프스 엄마'들의 고단한 발걸음이, 사실은 얼마나 위대하고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지 잊지 않으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