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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키소스와 에코: 메아리치는 삶을 멈추고 온전한 '나'를 돌보는 시간

by jjungee.k 2026. 9. 9.

오늘 나눌 신화 이야기는 "나르키소스와 에코: 메아리치는 삶을 멈추고 온전한 '나'를 돌보는 시간"입니다. 엄마가 된 이후, 우리의 일상은 참 많은 부분에서 나보다 아이를 향해 맞춰집니다. 주말의 외출 장소도, 텔레비전 채널도, 심지어 매일 마주하는 식탁 위의 메뉴조차 내 취향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게 되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좋아했던 게 뭐였지?' 하고 내 고유의 색깔을 잊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요정 '에코'는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남의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 해야 하는 슬픈 저주에 걸렸습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 메아리치는 삶을 멈추고 온전한 '나'를 돌보는 시간
나르키소스와 에코: 메아리치는 삶을 멈추고 온전한 '나'를 돌보는 시간

 

1. 에코의 슬픈 저주: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 요정

남이 한 말의 끝부분만 따라 해야 하는 형벌

숲속의 아름다운 요정 에코는 본래 꾀꼬리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수다 떠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들의 여왕 헤라의 화를 돋운 죄로 아주 가혹한 저주를 받고 맙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먼저 말할 수 없고, 오직 남이 한 말의 마지막 단어만 메아리처럼 따라 해야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습니다.

에코는 아름다운 청년 나르키소스를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지만, 그에게 "사랑해"라는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르키소스가 "거기 누구 있어?"라고 외치면 "있어..."라고 메아리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저리 가!"라고 소리치면 그저 "가..."라고 서글프게 따라 할 수밖에 없었죠. 결국 자신의 진짜 마음을 전하지 못한 에코는 슬픔 속에 야위어가다 뼈는 바위가 되고 목소리만 남은 슬픈 메아리(Echo)가 되어버렸습니다.

2. 식탁 위의 에코: "아이 먹을 수 있는 걸로 먹자"

매운맛을 잃어버린 엄마의 밍밍한 식단

에코의 그 답답하고 서글픈 마음을, 저는 주말마다 가족 외식을 나설 때면 뼈저리게 느끼곤 했습니다. "오늘 뭐 먹고 싶어?" 남편이 제게 메뉴를 물어볼 때마다, 제 입에서는 늘 똑같은 대답이 메아리처럼 흘러나왔습니다. "글쎄, 아이랑 같이 먹을 수 있는 안 매운 거. 돈까스나 칼국수 같은 거 먹자." 아니면 여러 음식을 시킬때에도 "나는 아이랑 먹어야 하니까 이걸로 먹을께."하고 내 취향을 죽여야 했습니다.

사실 저는 매운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채로운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 살배기 아이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다 보니, 제 식탁에는 늘 고춧가루 하나 없는 하얗고 슴슴한 음식들만 올라왔습니다. 아이의 건강과 입맛이라는 거대한 절대 기준 앞에서 제 취향은 묵살되었고, 저는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거면 나도 좋아"라며 앵무새처럼 가족들의 입맛에 제 자신을 맞추어 가는, 식탁 위의 에코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3. 메아리를 멈추고 나만의 미각을 깨우다

"대체 나는 왜 내가 먹고 싶은 걸 못 먹지?"

그러던 어느 날, 밍밍한 고기 국물에 밥을 말아 아이를 먹이고 남은 것을 대충 긁어먹으려던 순간 문득 억울함과 허탈함이 울컥 밀려왔습니다. '대체 나는 왜 내가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먹고 살지?' 가족을 사랑하는 것과 내 취향을 억누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데, 저는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의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온전히 저 혼자 식사할 수 있는 시간(아이나 남편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대충 빵으로 때우던 습관을 버렸습니다. 대신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철저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식탁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시켜 땀을 뻘뻘 흘리며 먹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샐러드에 정성스레 수란을 얹은 뒤, 발사믹 식초를 톡톡 뿌려 근사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식사를 차려냅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맛을 느낄 때 가장 나다운 행복을 느끼는지 제 미각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4. 잃어버린 취향의 조각들을 기꺼이 맞추며

타인의 말끝만 따라 하다가 형체마저 사라져 버린 에코의 비극은,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채 희생만 반복하는 맹목적인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보여줍니다. 비록 가족 외식을 할 때는 여전히 아이의 입맛을 배려해 하얀 음식을 먹게 되겠지만, 적어도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억눌렀던 제 취향을 아낌없이 펼쳐보려 합니다.

오롯이 내 입맛에 맞춘 밥을 챙겨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를 넘어 잃어버린 '나'라는 사람의 윤곽을 다시 또렷하게 그려내는 아주 다정하고도 중요한 의식입니다. 가족을 향한 메아리(Echo)로만 남는 대신, 가끔은 매운 음식을 베어 물고, 내가 사랑하는 향긋한 식재료들의 냄새를 들이마시며 묵묵히 나만의 첫 목소리를 내어볼 것입니다. 일상의 식탁 위에서부터 온전한 나의 색깔을 찾아갈 때, 엄마로서의 제 삶도 비로소 지치지 않고 더 단단하게 빛날 수 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