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온 힘을 다해 밀어붙여도 절대 열리지 않는 굳게 닫힌 문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10년이라는 길고 지루했던 싸움을 단숨에 끝내버린 기발한 아이디어, 즉 '트로이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의 목마: 세상을 뒤바꾼 발상의 전환'을 조용히 떠올리곤 한다. 오늘 이 글에서는 거대한 목마와 관련된 영화 같은 신화의 서사를 찬찬히 되짚어볼 것이다. 힘과 고집이 아닌, 생각의 방향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견고한 성벽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린 그 이야기를 통해, 내 일상과 삶을 마주하는 태도를 가만히 돌아보려 한다.

끝나지 않는 10년의 전쟁, 트로이의 견고한 성벽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와 전쟁의 시작
이야기의 웅장한 서막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로부터 출발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 불렸던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져 바다를 건너 트로이로 도망쳐 버린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하루아침에 빼앗겨 분노한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는 그의 형이자 미케네의 위대한 왕이었던 아가멤논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이를 핑계로 트로이의 풍부한 물자를 탐내던 아가멤논은 그리스 전역의 내로라하는 영웅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무려 천 척이 넘는 거대한 전함이 푸른 에게해를 까맣게 뒤덮으며 트로이를 향해 출항했다. 그 뱃머리에는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아들인 무적의 영웅 아킬레스를 비롯해, 수많은 전사들이 승리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스 연합군에게 트로이는 금방이라도 짓밟을 수 있는 작은 모래성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트로이의 성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고 단단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태양의 신 아폴론이 직접 지었다고 전해지는 그 거대한 성벽은, 아무리 거대한 바위를 투석기로 쏘아대고 수만 명의 군사가 성문을 두드려도 작은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지쳐가는 영웅들과 깊어지는 무력감
그렇게 시작된 전쟁은 1년, 2년을 넘어 무려 10년이라는 끔찍하게 긴 세월 동안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칼과 방패가 부딪히는 소리가 매일같이 울려 퍼졌지만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쟁이 길어지며 양쪽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았다. 트로이의 든든한 방패였던 위대한 왕자 헥토르는 아킬레스의 창에 목숨을 잃었고, 무적이라 불리던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 역시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유일한 약점인 발뒤꿈치를 맞고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전염병 속에서 소중한 전우들을 잃어갔고, 그리스 군인들의 마음속에는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짙은 절망감만이 남게 되었다. 자신들의 압도적인 무력과 숫자가 거대한 성벽 앞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군인들을 끝없는 무력감의 늪으로 빠뜨렸다.
매일 아침 밥을 안 먹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버티는 아이와 땀을 쥐며 실랑이를 할 때나, 혹은 아무리 시간을 쏟아부어도 제자리걸음인 것처럼 느껴지는 막막한 과제들을 마주할 때면 나 역시 트로이 성벽 앞의 그리스 군인들처럼 덜컥 힘이 빠지곤 한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목소리를 높이고 억지로 상황을 끌고 가려 하지만, 마치 트로이의 성벽처럼 한 치의 틈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힘과 고집만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벽이 내 일상 곳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뼈아픈 순간들이다.
힘이 아닌 지혜로, 목마를 세우다
포기 대신 시선을 비튼 오디세우스
지휘관들조차 고개를 떨구고 이제 그만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말할 때,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만은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는 칼을 휘두르는 것보다 머리를 쓰는 것에 능한, 매우 영리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지난 10년 동안의 뼈아픈 실패를 조용히 돌아보며 한 가지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창과 칼이 저 성벽보다 단단하지 않다면, 무기로 벽을 부수려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완전히 틀렸다.'
그는 무력이 아닌 전혀 다른 길, 즉 적의 굳게 닫힌 마음을 속이는 기발한 작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밖에서 억지로 문을 두드려 여는 대신, 적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성문을 열게 만드는 완벽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포세이돈을 향한 가짜 제물, 거대한 함정
오디세우스의 지휘 아래, 그리스 군의 뛰어난 목수 에페이오스는 산으로 올라가 거대한 소나무들을 베어냈다. 그리고 며칠 밤낮을 꼬박 새워 산더미처럼 거대한 나무 조각상, 즉 훗날 전설이 된 '트로이 목마'를 깎아 만들었다. 목마의 배 안쪽은 텅 비어 있는 구조였고, 그 어두운 공간 속으로 오디세우스를 비롯한 그리스 최고의 용사 삼십여 명이 숨죽인 채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나머지 그리스 군인들은 해변에 세워두었던 자신들의 막사에 불을 지르고 파도가 치는 바다 멀리 사라졌다. 사실 그들은 정말 고향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트로이에서 멀지 않은 테네도스라는 작은 섬 뒤편에 닻을 내리고 쥐죽은 듯 숨어있었을 뿐이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텅 빈 잿빛 바닷가에는 오직 위압감을 뿜어내는 거대한 나무 목마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이 대목을 가만히 곱씹어 보면, 오디세우스가 더 크고 튼튼한 투석기를 만들지 않고 속이 텅 빈 나무 인형을 깎았다는 사실이 내게 조용한 깨달음을 준다.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뾰족한 논리나 큰 목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통제하기 위해 더 무서운 얼굴로 화를 내는 대신,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놀이처럼 상황을 슬쩍 비틀었을 때 오히려 아이가 먼저 웃으며 다가오던 일상의 순간들이 겹쳐 떠오른다. 정면 돌파가 늘 정답은 아니며, 때로는 상대를 경계심 없이 안심시키고 스스로 마음을 열게 만드는 부드러운 우회가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성문은 밖이 아닌 안에서 열린다.
트로이 사람들의 착각과 환희
이른 아침, 성벽 위에서 텅 빈 바닷가를 내려다본 트로이 사람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긋지긋했던 10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마침내 자신들의 승리로 끝났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성문을 활짝 열고 바닷가로 몰려나온 그들 앞에는 압도적인 크기의 목마가 서 있었다.
이때 오디세우스가 미리 남겨둔 그리스 군의 첩자 시논이 밧줄에 묶인 채 끌려 나와 완벽한 눈물 연기를 펼치며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리스 군대는 험난한 귀향길의 안전을 위해 바다의 신에게 이 거대한 목마를 제물로 바치고 떠났습니다. 만약 트로이가 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는다면, 신의 축복을 받아 트로이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모두가 이 거짓말에 속은 것은 아니었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그리스 인들이 남긴 선물은 믿을 수 없다"며 목마를 향해 날카로운 창을 던졌고, 예언자 카산드라 역시 피눈물을 흘리며 저 목마가 트로이를 잿더미로 만들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우연히 바다에서 거대한 독사 두 마리가 기어 나와 라오콘과 그의 아들들을 칭칭 감아 물어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이를 본 트로이 사람들은 신이 라오콘에게 벌을 내렸다고 착각했고, 시논의 새빨간 거짓말을 완벽한 진실로 맹신하게 되었다.
불타는 트로이,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결말
승리에 완전히 도취된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 안으로 모시기 위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 목마가 너무 거대해 성문을 통과할 수 없자, 자신들을 10년이나 지켜주었던 튼튼한 성벽을 스스로 망치로 부수어 길을 낸 것이다. 그날 밤, 트로이 시내 곳곳에서는 승리를 축하하는 엄청난 축제가 벌어졌다. 거리에는 독한 포도주가 물처럼 흘렀고, 밤이 깊어지자 취한 사람들은 경계심을 모두 푼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방이 고요해진 칠흑 같은 새벽, 숨 막히는 목마의 배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오디세우스와 용사들이 밧줄을 타고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코를 골며 잠든 경비병들을 소리 없이 처치하고, 섬 뒤에서 몰래 돌아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리스 군대를 위해 트로이의 굳게 닫혀있던 성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10년 동안 밖에서는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었던 거대한 성이 무너지는 것은, 그 성문이 안에서 열린 단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결국 그토록 견고했던 트로이의 성벽을 불태우고 허문 것은 밖에서 날아온 적의 거센 창칼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끌어안고 들어온 나무 목마였다. 일상 속에서 도저히 풀리지 않는 답답한 덩어리를 만날 때마다, 어쩌면 나 역시 외부의 환경이나 남의 탓만 하며 밖에서 억지로 문을 부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조용히 돌아보게 된다. 억지로 힘을 주고 밀어붙이는 대신, 내 안의 굳어진 생각부터 부수어 보고 시선을 다르게 틀어볼 때, 비로소 내 삶의 단단한 성문도 안에서부터 부드럽게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