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메리카 멕시코 고원에서 찬란한 제국을 건설했던 아즈텍(Aztec) 문명의 신화는 세계의 여타 창세 신화들과 비교할 때 유독 어둡고 비장하며, 극단적인 희생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이 아즈텍 신화라고 하면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제단에 바쳤던 끔찍한 인신공양 의식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피비린내 나는 의식의 기저에는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우주'를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든 지탱해 보려 했던 고대인들의 처절한 우주관이 깔려 있다. 본 글에서는 아즈텍의 창세 신화인 '다섯 번째 태양'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왜 그토록 잔인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는지 종교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미 네 번이나 멸망한 세계: 태양의 시대
반복되는 파괴와 멸망의 트라우마
아즈텍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이미 과거에 네 번이나 창조와 철저한 멸망을 반복했다고 믿었다. 아즈텍 신화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는 태양의 지배를 받는 시대로 나뉜다. 첫 번째 태양의 시대는 거인들이 살았으나 재규어들에게 잡아먹히며 멸망했다. 두 번째 태양의 시대는 거대한 허리케인(바람)에 의해 휩쓸려 파괴되었고, 세 번째 시대는 끔찍한 불의 비(화산 폭발)가 쏟아져 잿더미가 되었다. 네 번째 시대마저 온 세상을 집어삼킨 거대한 대홍수(물)로 인해 멸망하고 말았다.
지진으로 무너질 운명인 다섯 번째 태양
과거의 네 번의 멸망은 재규어, 바람, 불, 물이라는 파괴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멕시코 고산 지대의 변덕스럽고 척박한 기후, 빈번한 화산 폭발과 허리케인이라는 가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고대인들이 느꼈던 절대적인 공포와 무력감이 '반복되는 멸망의 서사'로 고착화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즈텍인들이 굳게 믿었던 현재 우주의 상태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다섯 번째 태양'의 시대이며, 이 마지막 태양 역시 언젠가 거대한 지진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어 인류가 영원히 멸망할 것이라는 끔찍한 시한부적 운명론을 믿고 있었다.
우주를 굴러가게 하는 동력: 피와 희생의 기호학
신들의 자기희생으로 태어난 현재의 태양
네 번째 세상이 홍수로 멸망한 후, 온 우주는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이때 테오티우아칸이라는 신성한 도시에 신들이 모여 새로운 태양을 띄우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태양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스스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끔찍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머뭇거리는 신들 사이에서, 가장 작고 병들어 온몸에 종기가 난 가난한 신 '나나와친'이 용기를 내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뒤이어 부유하고 교만한 신 '테쿠시스테카틀'도 불길에 뛰어들었다. 뼈와 살이 타들어가는 이 위대한 자기희생의 대가로, 마침내 어둠을 찢고 눈부신 다섯 번째 태양과 달이 하늘로 솟아오르게 되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우주적 채무 의식
문제는 하늘로 솟아오른 태양이 움직이지 않고 하늘 한가운데 멈춰 섰다는 것이다. 우주의 시간이 흐르고 생명이 순환하기 위해서는 태양이 움직여야 했다. 결국 남아있던 다른 모든 신들마저 자신의 피를 뽑아 태양에게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태양은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즈텍 사람들은 이 신화를 통해 아주 무거운 철학적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이 누리는 한 줌의 햇빛과 비, 그리고 생명은 모두 신들이 스스로를 불태우고 피를 흘린 대가로 얻어진 '거대한 빚(우주적 채무)'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언제 멈출지 모르는 태양을 계속 움직이게 하고 다가올 지진과 멸망의 시간을 하루라도 더 늦추기 위해, 인간은 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가진 가장 성스러운 에너지인 '붉은 피'를 끊임없이 제단에 바쳐 우주에 에너지를 공급해야만 했다. 인신공양은 단순한 야만적 살육이 아니라, 우주의 붕괴를 막기 위한 인간들의 처절하고도 필사적인 부양 의무였던 것이다.
불안의 통제와 제국 유지를 위한 정치생태학
종말론을 활용한 공포의 정치와 통치 체제
종교적, 신화적 껍질을 벗겨내고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섯 번째 태양 신화는 아즈텍 제국이 광활한 영토와 피지배계급을 통제하기 위해 고안해 낸 가장 강력한 통치 이데올로기였다. 우주가 멸망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공포심을 조장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제물(주로 전쟁 포로나 주변 부족민)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움으로써 아즈텍은 주변 국가들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정복할 정당성을 확보했다. 신화를 통한 공포의 내면화는 피지배층의 반란을 억제하고 제국의 중앙집권적 권력을 강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장치로 작동했던 것이다.
종말 앞에서의 능동적 참여와 무거운 책임감
다섯 번째 태양의 신화는 단순히 잔혹한 고대 미개인들의 미신으로 치부될 수 없다. 이는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한없는 나약함과, 동시에 그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이다. 아즈텍인들은 다가올 우주의 종말을 그저 손 놓고 기다리는 무기력한 존재이기를 거부했다. 비록 그 방식이 피를 부르는 비극적이고 끔찍한 형태였을지라도, 그들은 신들이 물려준 이 위태로운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우주의 동력원이 되기를 자처했다. 극도의 실존적 불안 속에서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의 책임을 짊어지려 했던 고대인들의 무거운 채무 의식은, 풍요 속에서도 지구의 생태적 파괴를 방관하고 있는 현대 문명에게 서늘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